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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운다헌에서의 요가와 차 명상 – 나를 찾아 떠난 2박 3일

lala-news 2025. 7. 13. 11:38

도시에 오래 머물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걸 느낀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에 몰두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에게 ‘쉼’은 더 이상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전남 보성의 한옥 스테이 ‘운다헌’.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한옥에서 요가와 명상, 다도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소개 문구에 이끌려 나는 짐을 쌌다. 봄이 완연한 5월, 초록이 가장 짙은 시기에, 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한 작은 여행을 떠났다.

보성차밭
녹음이 짙은 보성차밭

도착과 첫인상 – 초록 물결 사이로 들어선 고요한 집

전남 보성역에 내리자 공기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미세먼지로 흐릿한 하늘이 아닌, 푸른 하늘과 탁 트인 산자락이 나를 반겼다. 예약해둔 스테이 ‘운다헌’은 차밭 언덕 위에 위치한 조용한 한옥이었다. 대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고즈넉한 기와지붕 아래 마루가 반짝이고 있었고, 어디선가 은은한 차 향이 퍼져 나왔다.

주인장은 조용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도착하셨군요. 오늘은 새벽 요가와 오후 다도 시간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 말에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방에 들어가 짐을 푼 후 마루에 앉아 잠시 차밭을 바라봤다. 바람이 차밭 위를 스쳐 지나가며 일렁이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 고요하게 마음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이곳은 소음이 없다. 그저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만 들렸다.

요가와 명상 체험 – 숨을 따라 나를 바라보다

첫날 저녁은 가볍게 산책으로 마무리하고, 다음 날 새벽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한옥 뒷마당에 마련된 요가 데크 위에 매트를 깔았다. 강사님은 크지 않은 목소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오늘은 몸을 깨우는 호흡과 간단한 빈야사 동작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요가 동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지금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내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니, 차밭에서 불어오는 공기의 향이 코끝에 닿았다. 내 안에서 무언가 가볍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요가가 끝난 후엔 짧은 명상이 이어졌다. 강사님은 말없이 우리가 앉을 수 있도록 공간만 마련해줬다. 자연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대답을 주고 있었다. 새소리, 찻잎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나는 그 소리들을 따라가며 내 안의 혼란과 복잡함이 서서히 정돈되는 걸 느꼈다.

차와 다도 – 고요한 마음을 차에 담다

오후엔 한옥의 별채로 이동해 다도 수업이 열렸다. 차를 우려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정적이고 깊은 집중을 요구했다.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찻잔을 데우고, 차를 우려내는 모든 동작이 마치 의식처럼 느껴졌다. 스테이의 주인장이 함께 다도를 진행했는데, 그분은 “차를 마시는 일은 곧 마음을 마주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럽게 향을 맡았다. 은은하고 깊은 향이 코를 지나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차를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삼켰다. 입안 가득 퍼지는 차의 떫은 맛과 따뜻함이 몸을 감싸안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말없이 앉아 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내 안에 있는 감정, 생각, 고요함을 관찰하는 시간. 그 짧은 명상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도시에서 커피를 마실 땐 느낄 수 없던 ‘차와 함께 머무는 시간’이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

디지털 없이 흐른 시간 – 오직 나에게 집중한 하루

여기선 휴대폰을 거의 보지 않았다.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았고, 일부러 와이파이도 연결하지 않았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안은 자유로 바뀌었다. 뉴스도, 메시지도, 알림도 없는 하루. 그 하루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어떤 걱정을 안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일기장을 꺼내 몇 자 적었다. “여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날 밤, 한옥의 나무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 아래서 나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한옥스테이
편안한 한옥스테이

귀가하며 – 마음에 차향을 담아 돌아오는 길

2박 3일의 여정이 끝났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내 운다헌의 조용한 아침과 차밭의 바람을 떠올렸다. 내 삶에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도시는 여전히 분주하겠지만, 내 마음 한켠엔 운다헌에서의 고요한 순간들이 남아 있다. 이제는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차를 우려 마시며 숨을 고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이 여행은 내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준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가장 값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