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로컬 여행/디지털 디톡스

서울을 껐더니, 마음이 켜졌다 – 직장 동료와 함양에서 보낸 2박 3일

lala-news 2025. 7. 14. 01:38

매일 쏟아지는 알림음과 무심코 넘기는 수십 개의 메시지 속에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지친 눈으로 야근 중인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우연히 옆자리 재현 씨와 눈이 마주쳤다. “주말에, 우리 그냥 아무 데나 떠나볼까요?”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우리는 어디로든, 그저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고민 끝에 고른 곳은 ‘함양’이라는 생소한 지명이었다. 휴대폰 검색 결과조차 많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끌렸다. 그렇게 우리는 2박 3일간의 자연 속 디지털 디톡스 여행을 떠났다. 목적은 단 하나,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 이번 여행 이야기 구성 보기
  • 지친 일상 속, 문득 떠나고 싶었던 어느 날
  • 천년 숲, 상림공원에서의 조용한 첫 산책
  • 와이파이도 없던 숙소, 그 밤의 따뜻한 대화
  • 오도재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고요한 풍경
  • 지리산 둘레길, 경쟁 없는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마지막 밤, 마음을 나누는 시간
  • 연결을 끊었더니, 진짜 마음이 들려왔다

 

 

상림공원
상림공원

1. 첫날, 상림공원에서 걸은 천년의 숲길

함양에 도착한 첫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상림공원이었다. 천년 숲이라 불리는 이곳은 신라 시대 때 조성된 우리나라 대표 숲길 중 하나다.
도심의 공원과는 전혀 다른, 숨이 깊어지는 고요함이 숲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넣고, 천천히 숲을 걸었다.
하늘을 가릴 만큼 높은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때, 나뭇잎은 마치 오래된 음악처럼 잔잔하게 울렸다.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더 좋았다.

“요즘은 대화도 다 업무로만 하지 않아요?”
재현 씨가 말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우리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걸은 게 대체 얼마 만이었을까.
숲은 우리 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더 조용히 감싸주었다.

2. 숙소에서 보낸 첫 밤 – 연결을 끊고, 온전히 나를 만나다

첫날 밤, 우리는 함양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 아래 민박집에 머물렀다.
푸르른 소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한 오래된 한옥 숙소였다.
와이파이는 없었고, 휴대폰 신호도 약했다.
보통이라면 불편했을 환경이었지만, 이번엔 그게 오히려 반가웠다.

방 안에는 작은 창문과 툇마루, 그리고 낡은 전기포트 하나뿐이었다.
밖에서는 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렸다. 도시의 소음이 없는 공간은 어색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색함이 곧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재현 씨와 나는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켠 채 마주 앉았다.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본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다.
술도, 음악도, 텔레비전도 없이 나눈 이야기들은 오히려 깊고 진했다.

“이런 밤은 정말 처음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마음은 꽉 찬 느낌.”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을 끊었더니, 비로소 자신에게 다시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오도재길
아름다운 드라이브길 오도재

3. 둘째 날, 오도재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진짜 풍경’

이튿날 아침, 우리는 오도재 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산을 차로 오르다 보니 구불구불한 도로가 마치 긴 리본처럼 이어져 있었다.
정상에 다다르자, 말 그대로 세상이 발 아래 펼쳐졌다.

스카이워크 위에 서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그 바람 속에 우리의 피로도 함께 날아가는 듯했다.
하늘과 산, 그리고 멀리 펼쳐진 들판은 필터 없이도 완벽했다.

재현 씨는 조용히 말했다.
“서울에서는 이런 걸 느낄 틈이 없어요. 무언가를 봐도 바로 지나가니까.”
우리는 30분 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경치를 바라보며 마음의 먼지를 천천히 털어냈다.

4. 셋째 날, 지리산 둘레길에서 걸은 나의 속도

여행 마지막 날은 지리산 둘레길 함양 구간을 걷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원이나 하동 쪽을 찾지만, 함양 쪽 둘레길은 조용하고 걷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오전부터 시작된 둘레길 트레킹은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며,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걸었다.
누가 먼저 걷고 누가 뒤처져도 괜찮았다.

중간쯤, 작은 절에 들렀다.
스님 한 분이 차를 내어주시며 우리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천천히 걸으세요. 이 길은 누구와 경쟁할 필요가 없는 길이니까요.”
그 말은 마치 마음속을 울리는 종소리처럼 깊게 남았다.

 

군고구마
군고구마와 묵은지

5. 마지막 밤,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 시간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냈다.
저녁은 마당에서 구운 고구마와 찰떡궁합인 묵은지로 대신했다.
재현 씨와 나는 작은 수첩을 꺼내 각자의 여행기를 적었다.
“오늘 밤은, 사진보다 기억이 더 선명할 것 같아요.”
그 말이 정말 와닿았다.

우리는 서로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회사에서의 불안,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무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 ‘동행자’가 되어 있었다.

6.연결을 끊었더니, 마음이 연결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도 꺼둔 채,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공허함이 아니라, 깊이 있는 충만함이었다.

함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이 무엇인지 알려준 곳이었다.
디지털을 꺼두고, 숲을 걷고, 별을 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새롭게 이해했고, 나 자신과도 가까워졌다.

도시의 속도에 지쳤다면, 연결을 잠시 끊어보라.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로 연결되어야 할 마음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