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손에 폰을 쥐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우리 가족 사이의 침묵을 당연하게 만들었고, 대화는 단답으로 줄었으며, 눈을 맞추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 속 정보와 메신저 알림이 우선이 되었고, 정작 내 옆에 있는 아이와는 마음을 제대로 나눈 기억조차 아득했다.
그래서 이번엔, 단단히 마음먹고 딸과 함께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가평. 사람 많은 관광지 대신, 조용한 숲속 글램핑장을 예약했다.
무엇보다 ‘하루 동안 스마트폰 없이 지내기’라는 약속을 나누며,
작게라도 우리 사이의 벽을 허물어보고 싶었다.
처음 글램핑장에 도착했을 때,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텐트를 바라봤다.
“오, 이거 캠핑장이야? 생각보다 좋다?”
텐트 안에는 침낭과 작은 조명등, 그리고 바닥에는 나무 향이 스며든 러그가 깔려 있었다.
딸은 핸드폰을 조용히 가방 안에 넣었다. 나도 그랬다.
폰을 멀리 두는 것만으로도, 뭔가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숯불의 향이 퍼지고, 고기 지글거리는 소리에 딸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이거 진짜 캠핑 같아. 신기하다.”
익어가는 고기를 먹으며, 우린 오랜만에 길게 이야기했다.
처음엔 학교 얘기, 친구 얘기.
그러다 딸이 조심스럽게 꺼낸 한마디.
“가끔은 말 안 해도 엄마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많은 걸 묻지 않고 지나쳐왔던 걸 깨달았다.
불멍을 하며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냈다.
학원에서 힘들었던 일, 친구와 다퉜던 날, 그리고
“사실 요즘은 내가 나를 잘 모르겠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도 그래. 어른이 되어도 그런 순간은 계속 와.”
밤하늘엔 별이 또렷하게 떠 있었고,
모닥불 옆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말없이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마치 대화를 다 나눈 후의 평온한 여운처럼, 마음이 깊이 가라앉았다.
다음날 아침, 숲속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었고, 공기엔 흙 냄새와 풀 내음이 섞여 있었다.
중간에 우리는 신발을 벗고 맨발 걷기를 해보았다.
처음엔 낯설고 간질간질했지만, 이내 발바닥을 자극하는 촉감이 온몸을 깨우는 느낌이었다.
딸도 발끝을 모래에 묻으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 이거 생각보다 좋다.”
산책로 끝자락에 넓은 바위가 있었다.
우리는 그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딸은 예전에 명상 수업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어서 익숙한 자세로 앉았다.
나도 따라 눈을 감았다.
폰도 없고, 소음도 없는 그 순간.
오롯이 나의 호흡과, 바람소리, 그리고 딸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건 마치, 지금까지 잊고 있던 ‘진짜 연결’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이런 고요함 속에서야 비로소
내 마음속 이야기들이 차분히 올라오는 걸 느꼈다.
글램핑장을 나서며, 우리는 근처 작은 맛집에 들러 따뜻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먹었다.
딸이 말했다.
“이런 여행, 가끔은 해도 좋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폰을 껐지만, 마음은 더 또렷해졌던 하루.
우리 둘 다 말로는 다 못했지만, 그 하루가 참 고맙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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