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로컬 여행/약초 산행

칡을 캐는 손,정선 약초산행과 삶을 배우는 시간 – 약초 여행 6화

lala-news 2025. 7. 12. 00:28

깊은 산골로 들어가면, 자연보다 먼저 사람이 보인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
약초산행 여섯 번째 주인공은 ‘칡’,
그리고 그 칡을 평생 캐온 어르신의 손이었다.

칡은 뿌리를 뽑아야 얻을 수 있는 약초다.
땀을 흘려야만 겨우 한 뿌리,
그 고된 작업 속에 숨어 있는 지혜와 생명력은
단순한 약초 그 이상이었다.

이번 여행은 ‘산 속 채취’에서 멈추지 않고,
산속 어르신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인생의 접점을 배우게 된 하루였다.

 

칡
칡뿌리

 

1. 정선으로 향하는 길 – 깊은 산, 조용한 기대

서울에서 정선까지는 3시간이 훌쩍 넘는다.
길은 멀고, 산은 점점 깊어졌다.
가도 가도 산이었다.
도시에선 단절된 듯했던 초록이,
이곳에서는 마치 숨 쉬듯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정선군 화암면의 작은 마을.
관광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역 어르신들이 ‘칡이 많이 나는 산’이라고 손꼽는 곳이다.

도착하자, 한 어르신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칡 캐러 왔다고? 허허, 그거 힘들 텐데…”
말투는 웃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산을 아는 사람의 조용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2. 칡을 따라 걷는 정선의 산길

칡은 나무 덩굴처럼 뻗은 식물이지만,
우리가 찾는 건 그 뿌리다.
수풀이 우거진 산길 아래로
굵은 줄기가 땅속 깊이 박혀 있고,
그 뿌리를 캐려면 땀과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어르신은 직접 삽을 들고 앞장섰다.
“이건 그저 파는 게 아니야. 기다려야 해.”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산에서 나고 자란 손놀림은 다르다.
우리는 그 옆에서 배웠다.
땅을 너무 깊이 파면 뿌리가 부러지고,
무리하면 다음 해에 다시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약 40분을 파서야 드러난 한 줄기 칡.
굵고 단단했고, 흙냄새를 진하게 품고 있었다.

 

3. 칡의 효능 – 뿌리 깊은 건강의 뿌리

칡은 단순한 뿌리식물이 아니라,
예로부터 한방에서 ‘갈근(葛根)’이라 불리며 약재로 쓰여왔다.
칡에는 이소플라본(푸에라린)이라는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 간 해독 작용,
✔️ 숙취 해소,
✔️ 혈당 조절,
✔️ 혈액 순환 개선,
✔️ 여성호르몬 균형 유지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칡즙은 열을 내려주는 성질이 있어,
예전에는 감기나 두통이 있을 때 달여 마시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건강식품으로 널리 활용된다.

민간에서는 칡을 말려 차로 끓여 마시거나, 즙을 내어 음료로 섭취하며
특히 여름철 갈증 해소와 피로 회복에 많이 쓰인다.

단, 뿌리를 채취할 땐 반드시 토양 오염이 없는 지역에서
깨끗이 손질 후 사용하는 것이 좋다.

 

4. 뿌리를 캐며 들은 이야기 – 어르신의 손

칡 뿌리를 들고 내려오는 길,
어르신과 잠시 마을 입구 평상에 앉았다.

그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손등은 햇볕에 오래 그을려 진갈색을 띠고 있었다.

“예전엔 하루에 열 줄은 팠지. 지금은 많이 못 해.”
“그땐 약초가 돈보다 귀했거든.”
“사람 살리는 게 더 중요했어.”

그 말이 가슴을 울렸다.
칡은 땅속에서 자라지만,
그걸 알아보는 사람, 그것을 캐는 사람,
그리고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약초’가 된다.

이날의 산행은 뿌리를 캐는 일이 아니라
그 뿌리에 깃든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칡차
향긋한 칡차

5. 산 아래 마을식당에서 만난 칡차

산행을 마친 뒤,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직접 달인 칡차를 따뜻하게 내어주었다.
색은 진한 갈색이었고, 향은 땅의 내음이 섞여 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 입안 가득 퍼지는 담백함과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어제 캔 거 말린 거예요. 저기 마당에서요.”
식당 주인의 말에
오늘 하루의 고됨과 배움이
고스란히 잔 안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차를 천천히 마시며
산이 준 선물과 사람의 정성에 감사했다.

 

이번 정선 산행은
가장 깊이 파야 했고,
가장 많이 배운 하루였다.

칡은 뿌리이지만, 그 안에는
건강, 자연, 사람, 그리고 삶의 내력이 함께 담겨 있다.

누군가는 그걸 약초라 부르고,
어떤 이는 ‘그저 흙 속의 뿌리’라 부르겠지만
오늘 내게 칡은 ‘사람을 닮은 식물’이었다.

 

 

🌿 다음 이야기
양구에서 만난 민들레밭과 봄의 햇살.
길가에 핀 노란 꽃에서 시작된 약초산행과,
자연이 선물한 초록빛 하루로 이어집니다.

👉 민들레 피는 길,양구 약초산행과 들꽃의 하루 – 약초 여행 7화
(곧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