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면 산도 말을 아낀다.
잎은 무성해지고, 땅은 촉촉하며, 사람은 조용해진다.
이번 약초산행의 목적지는 평창.
강원도의 맑은 공기와 숲속 습기를 품은 땅에는 지금 ‘머위’가 한창이다.
머위는 향이 강하지 않지만, 삶아내면 입안 가득 고소함과 쌉싸름함이 번지는 약초다.
이번 여행은 평창의 조용한 숲길을 걷고,
머위를 따라 마을밥상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하루’였다.
1. 평창으로 향하는 길 – 차분한 시작, 설레는 숲
서울에서 평창까지는 차로 2시간 반.
이른 아침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달라진다.
회색 도시는 사라지고, 논과 밭, 비닐하우스, 멀리 보이는 설산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산행은 평창 진부면의 작은 숲길로 정했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산악회 회원 중 한 분이 “여기 머위가 참 잘 자란다”며 추천한 지역이다.
도착하니 공기는 서늘했고, 전날 내린 비 덕분에 숲 바닥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머위는 물기 있는 그늘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 사이사이를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2. 머위를 따라 걷는 숲길 – 땅을 보고 걷는 시간
머위는 높지 않은 줄기에서 퍼지는 넓은 잎이 특징이다.
그늘진 곳이나 계곡 주변의 습한 땅을 좋아하고,
줄기는 연녹색이며 손으로 만지면 약간 끈적한 수액이 묻어나온다.
처음에는 고사리나 다른 잎과 헷갈릴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머위의 어린 줄기만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너무 큰 잎은 질기기 때문에 채취하지 않는다.
회원 중 한 분이 말했다.
“머위는 꺾는 맛이 아니라, 삶는 맛이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지금은 조용히 줄기를 꺾고 있지만,
진짜 감동은 마을 밥상 위에서 온다는 뜻이었다.
3. 머위의 효능 – 뿌리보다 깊은 봄의 건강
머위는 향이 세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몸속 깊은 곳을 정리해주는 해독 약초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머위에는 플라보노이드, 베타카로틴, 식이섬유, 칼륨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 간 기능 개선,
✔️ 위 점막 보호,
✔️ 기관지 건강,
✔️ 이뇨 작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머위는 감기 후 기관지가 약해졌을 때 민간요법으로도 사용되며,
쌉싸름한 맛은 소화력을 자극하고 식욕을 돋우는 효과도 있다.
머위차, 머위잎 쌈, 장아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특히 줄기 줄기마다 숨겨진 향은 삶아서 먹어야 비로소 드러난다.
단, 머위의 뿌리나 잎을 생으로 다량 섭취하면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인해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니 꼭 조리 후 섭취하는 것이 안전하다.
4. 마을밥상에서 만난 봄 – 머위의 진짜 얼굴
산행을 마치고 평창읍 인근 작은 식당을 찾았다.
정갈한 시골밥상에 머위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참기름과 된장으로 무친 머위나물,
생머위잎에 고추장을 얹어 싸먹는 머위쌈,
그리고 머위줄기로 만든 장아찌.
그 식당은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우리가 채취한 머위를 내밀자,
“이건 향이 아주 진하네. 제대로 된 머위네.”라며 웃으셨다.
식사 중 주인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머위는 손질이 귀찮아서 젊은 사람들은 잘 안 먹어.
근데 이런 거 자주 먹는 사람이 오래 살아.”
그 한마디에 모두가 웃었지만,
어쩐지 진심이 느껴졌다.
‘귀찮은 일’을 반복해 온 삶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5. 산과 밥상 사이의 여백 – 평창에서 느린 오후
식사를 마치고 평창 시내 작은 카페에 들렀다.
아기자기한 한옥을 개조한 공간이었고,
창밖으로는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주문하고,
오늘 채취한 머위를 가방에서 꺼내 정리했다.
바구니 안의 머위는 흙이 묻어 있었고,
잎은 이미 조금 시들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자연은 포장되지 않아도 소중했고,
이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천천히 놓아주고 있었다.
산행은 끝났지만, 오늘 하루는 계속되고 있었다.
도시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감각.
그게 바로 약초산행이 주는 진짜 가치였다.
머위를 따라 걷고,
마을 식당에서 그 머위를 먹고,
카페에서 그 맛을 되새기는 오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연 속 일상'에 가까웠다.
봄은 길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생명과 향기가 숨어 있는지
오늘 평창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다음 이야기
정선의 깊은 산골에서 만난 칡과 약초 어르신의 이야기.
산에서 삶을 캐고, 뿌리에서 이야기를 들은 하루가 펼쳐집니다.
👉 칡을 캐는 손,정선 약초산행과 삶을 배우는 시간 – 약초 여행 6화
(곧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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