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문턱, 충주는 깊은 녹음으로 물들어 있었다.
5월 말, 나는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충주의 한 시골 마을로 고사리 산행을 떠났다.
두릅과 다래순에 이어 이번 여정의 주인공은 바로 고사리.
어릴 적 시골 밭에서 본 기억은 있었지만, 직접 산에 들어가 채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연이 숨겨둔 보물 같은 약초를 찾으며, 마을 밥상에서 만난 건강한 식사까지.
이번 여행은 단순한 채취를 넘어 ‘자연과 식탁의 연결’을 온몸으로 체험한 하루였다.
1. 충주로 향한 여정 – 고사리를 찾아 떠나다
서울에서 충주까지는 약 두 시간.
이른 새벽, 산악회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목적지는 충주 산척면의 작은 마을 인근 야산이었다.
도시와 멀지 않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한적한 산길이 우리가 향한 곳이다.
차 안에서 회원들은 고사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사리는 햇살과 비 사이에서만 제대로 자라지.”
“그늘만 있는 곳에서는 자라긴 해도 연하지 않아.”
자연을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들의 말에는 경험이 담겨 있었다.
2. 고사리를 따라 걷는 초여름 산길
산 입구에 도착하자 벌써 몇몇 지역 어르신들이 채취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천천히 산길을 올랐다.
초록빛 잎이 온 산을 덮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서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고사리는 막 자라난 ‘일자형 고사리’를 찾아야 한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의 어린 순, 손으로 살짝 꺾을 수 있을 정도의 부드러운 줄기가 기준이다.
너무 자라버린 고사리는 억세고 식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초보자는 채취 타이밍이 중요하다.
산에 들며 회원들은 말이 줄었다.
조용히 잎을 들추고, 눈으로 식별하며, 한 줄 한 줄 고사리를 꺾었다.
자연 속에 들어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침묵을 배운다.
3. 고사리의 효능 – 그냥 나물이 아닌 ‘몸을 살리는 채소’
고사리는 단순한 나물이 아니다.
예로부터 ‘봄철 피로 회복을 돕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고사리에는 칼륨, 식이섬유, 베타카로틴, 비타민 A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 이뇨 작용,
✔️ 혈압 조절,
✔️ 노폐물 배출,
✔️ 항산화 작용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고사리는 위를 부드럽게 보호하고, 장 운동을 도와 소화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단, 생으로 먹는 것은 독성(프테로필린 성분) 때문에 피해야 하며,
꼭 충분히 삶아서 독을 제거한 뒤 섭취해야 안전하다.
자연산 고사리는 시중 고사리보다 향이 진하고,
건조해두면 1년 내내 사용 가능한 건강 식재료로 재탄생한다.
4. 마을 밥상 – 자연에서 밥상까지 이어지는 건강 루트
고사리 채취를 마치고 산 아래 마을로 내려오자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근처 마을회관 앞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곳은 현지 어르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로컬 식당이었다.
상 위에는 보리밥, 고사리나물, 머위나물, 된장국, 감자전 등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특히 고사리나물은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간단히 무쳐낸 것이었지만,
향과 식감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떤 고사리보다 깊고 부드러웠다.
식당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셨다.
“이건 오늘 아침에 우리 밭에서 딴 거야. 손으로 꺾은 고사리는 식감이 달라.”
그 말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식’이 담긴 이야기였다.
5. 고사리를 말리는 시간 – 산행 이후의 작은 작업
식사를 마치고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던 중,
마당에서 고사리를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짚으로 짠 넓은 바구니 위에 고사리가 한 줄 한 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햇볕은 따갑지 않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 풍경은 마치 시간의 속도를 늦춘 듯 조용하고 고요했다.
말린 고사리는 겨울까지 두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현지에서는 제사 음식뿐 아니라 일상 밥상에서도 자주 사용된다고 했다.
자연을 얻고, 말려두고, 나눠먹는 이 순환은
현대인들이 잊고 지낸 ‘식재료의 기본’이었다.
고사리를 따라 걷는 충주의 산길은
단순히 초록 속을 걷는 일이 아니었다.
자연의 흐름에 발맞추고,
그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고사리는 산에서 자라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식탁에 오를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협력, 그 작은 공존의 기록이 오늘 하루에 담겨 있었다.
🌿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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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걷는 길 위에서 만난 봄의 또 다른 맛과
로컬카페에서의 따뜻한 휴식을 담은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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