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면 계절이 가장 먼저 말을 건다. 봄이 오면 나뭇가지 끝에서 두릅이 돋고, 흙냄새를 따라 머위가 고개를 든다. 4월 중순, 나는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의 작은 마을로 약초산행을 떠났다. 목적은 두릅 채취였지만, 그날 산이 준 건 그 이상이었다. 자연의 향기, 마을의 따뜻함, 사람 사이의 온기가 이 하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그날의 기록이자, 자연과 마을이 전해준 봄의 이야기다.
1. 가평으로 향한 봄날의 출발
서울은 이미 도시의 봄꽃이 지고 있었지만, 가평은 이제 막 봄기운이 퍼지는 중이었다. 아침 6시, 산악회 회원들과 봉고차를 타고 서울을 출발했다. 차 안에는 채취 가위, 바구니, 물, 그리고 각자의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목적지는 가평 북면의 한 야산. 관광지는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두릅이 잘 자라는 산’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차창 밖으로는 안개 낀 논밭과 흐드러진 벚꽃이 이어졌고, 그 풍경은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진짜 봄’이었다.
차 안에서 “올해 두릅이 어떨까?”, “작년엔 저 사면이 꽤 괜찮았지” 같은 말이 오갔다. 그 말들 사이에는 자연과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있었다. 도착 전부터 나는 벌써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2. 산속에서 만난 봄의 첫 맛, 두릅
산 입구에 도착하니 공기는 아직 싸늘했고, 이슬에 젖은 나무들이 봄햇살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우리는 천천히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길은 넓지 않았지만, 나무 그늘이 드리운 흙길은 부드럽고 걷기 편했다.
산 중턱쯤 올라갔을 때, 선배 회원 한 분이 나무 끝을 가리켰다.
“저기, 두릅 올라왔네.”
가늘고 연한 초록빛 두릅이 가지 끝에 돋아 있었다. 손에 든 가위로 줄기를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잘랐다.
두릅의 특유의 쌉싸름한 향이 손끝에 스며들었고, 그 순간 나는 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산 곳곳엔 다래순, 머위도 자라고 있었고, 햇살은 점점 따뜻해졌다. 자연은 시계를 쓰지 않아도, 제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3. 마을에서 만난 점심 한 끼의 따뜻함
산행을 마치고 마을 아래로 내려오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동네 어귀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는데, 메뉴는 단출했다. 보리밥, 청국장, 취나물 무침, 두부전.
하지만 그 음식들은 고급 레스토랑 어느 요리보다 따뜻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식당 주인 어르신께서 우리가 채취한 두릅을 보더니, 고추장에 조물조물 무쳐서 식탁에 올려주셨다.
“이거 기름 두 방울이면 끝이야. 욕심내면 맛이 없어져.”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자연도, 인생도 너무 손대지 않고 본래의 맛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 같았다.
우리는 마당 평상에 앉아 햇살을 쬐며 식사를 마쳤고, 산에서 묻은 땀과 흙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은 가볍고 편안했다.
두릅은 단순한 봄나물이 아니다.
예로부터 ‘산채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한 약초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포닌 성분이 풍부해 면역력 강화와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며,
고혈압이나 당뇨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특유의 쌉쌀한 맛은 해독 작용을 돕고, 위장을 자극해 소화를 원활하게 해준다.
민간에서는 두릅을 삶아 나물로 무치거나, 튀김 또는 장아찌로 섭취해왔다.
자연에서 채취한 두릅은 특히 향이 깊고, 손질만 잘하면 간단한 건강식이 된다.
4. 장터에서 만난 로컬의 진짜 모습
돌아가는 길에 가평 5일장에 들렀다.
장터 한편에는 오늘 채취한 약초들이 나무 바구니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두릅, 고사리, 엄나무순, 민들레 등…
가게를 지키는 70대 어르신은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효능과 요리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두릅은 데쳐서 찬물에 헹궈야 향이 살아.
칡은 삶고 껍질 벗겨서 차로 마시면 돼.”
이건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로컬 지식의 전수였다.
나는 그 말을 메모장에 적었고, 오늘 하루가 단순한 산행 이상의 의미라는 걸 느꼈다.
5. 자연이 가르쳐준 균형
약초산행은 몸만 움직이는 등산이 아니었다.
산에서 약초를 채취한다는 건, 욕심과 예의를 동시에 시험받는 일이었다.
두릅을 너무 일찍 따면 작고 약하고, 너무 늦으면 질기다. 뿌리를 뽑으면 다음 해 자라지 못하고, 잎을 전부 따면 식물은 죽는다.
산은 말없이 가르쳤다.
‘적당히’, ‘천천히’, ‘나누며’.
도심에선 늘 뺏기지 않으려 바쁘지만, 산에서는 나눌수록 더 깊은 풍요가 생겼다.
가평의 작은 산에서 만난 두릅은, 봄의 맛이자 자연의 선물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마을 식당에서 나눠먹은 점심, 시장에서 만난 어르신의 조언, 그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이 경험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계기였다.
다음 산행은 다래순을 따라 양평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도 봄은 또 다른 얼굴로 말을 걸어올 것이다.
🌿 다음 이야기
다래순을 따라 들어선 양평의 약초길, 그리고 우연히 만난 장날의 풍경.
산속에서 자연을 캐고, 시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온 하루를 기록합니다.
👉 다래순 찾으러 떠난 양평 약초길과 장날 풍경 – 약초 여행 2화
(곧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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