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산행은 어느새 내게 주말의 루틴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
다래순, 고사리에 이어 이번에 찾을 봄 약초는 ‘엄나무순’이다.
엄나무는 향이 강하고, 줄기엔 가시가 있어 쉽게 다가가기 어렵지만,
그 어린 순은 봄철 건강 식재료로 귀하게 여겨져 왔다.
이번 산행은 ‘걷기 좋은 숲길’과 ‘감성적인 로컬카페’가 어우러진 코스로,
자연과 일상, 약초와 힐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하루였다.
1. 인제로 향한 느린 출발
서울을 떠난 건 오전 7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춘선을 따라가듯 이어지는 산과 강은
이번 여행이 도시에서 벗어난 '느린 하루'가 될 것임을 예고해줬다.
목적지는 인제군 기린면의 작은 산길.
지도로 보면 짧은 거리지만, 실제로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했다.
산 입구에 도착하니 공기부터 다르다.
비가 내린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숲은 쾌청했고, 흙냄새는 촉촉했다.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회원들은 “오늘 엄나무순이 좀 나왔을까?”, “지난주엔 조금 이르더라” 같은 말을 나눴다.
약초산행은 언제나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더 기대되고, 더 신중해진다.
2. 가시를 피해 찾은 봄 – 엄나무순 채취기
엄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많아 쉽게 손댈 수 없는 나무다.
그러나 어린 순은 잎이 피기 전 짧게 솟아오르며,
채취 타이밍이 맞으면 가시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며 우리는 가지 끝을 주의 깊게 살폈다.
연둣빛 잎이 살짝 퍼지려는 엄나무순을 보면
가위를 꺼내 줄기 아래를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줄기에서 퍼지는 독특한 향은 두릅이나 고사리와는 또 다른 깊은 향을 품고 있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장갑을 착용했고,
엄나무를 잘 아는 선배는 “줄기 중심부가 너무 질기면 채취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한참 채취한 뒤, 바구니 속에 쌓인 엄나무순은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귀하고 정성스러워 보였다.
3. 엄나무순의 효능 – 향만큼 강한 생명력
엄나무순은 단순한 산나물이 아닌, 약용 효과가 높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항염 작용, 관절 건강 개선, 혈당 조절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민간에서는 당뇨에 좋은 나물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간 해독, 위장 강화, 항균 효과에도 도움을 준다고 전해진다.
줄기에서 나는 강한 향은
체내 염증 완화나 면역력 향상에 기여하는 방향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서다.
특히, 엄나무는 고기와 함께 끓이면 기름기를 잡아주고 소화를 돕는 식재료로도 활용된다.
단, 가시가 많고, 줄기가 질기므로
어린 순만 골라 손질하고, 데칠 때는 소금물에 1~2분 정도 삶은 뒤
찬물에 충분히 헹궈야 맛과 향이 가장 잘 살아난다.
4. 산을 내려와 들른 로컬카페 – 힐링의 정점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인제읍 근처의 작은 로컬카페에 들렀다.
카페 이름은 ‘들숨과 날숨’,
작은 목재 건물에 고요한 음악이 흐르고,
창밖으로는 인제의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직접 만든 쑥파운드를 주문했다.
산에서의 흙냄새와 나물 향이 코끝에 남아 있었지만,
이곳의 공기는 깨끗하고, 차향은 그걸 부드럽게 감싸줬다.
카페 사장님도 지역 분이셨고,
엄나무순 이야기를 하자
“아, 그건 제 남편도 좋아해요. 특히 장아찌로 만들면 감칠맛이 대단해요.”라고 웃으며 말해주셨다.
자연과 사람이 이렇게 하나로 연결될 때,
산행은 그저 운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
5. 오늘의 마무리 – 느리게 걷고, 깊이 먹고, 오래 남는 하루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모두 조용했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되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나무순 채취는 손이 많이 가고,
양도 많지 않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겐 봄의 최고 선물이다.
나는 바구니 속에 담긴 엄나무순보다,
오늘 내가 느낀 이 느린 하루의 기억이 더 소중하게 남았다.
자연은 늘 말을 걸고, 우리는 그 안에서 방향을 찾는다.
이번 인제 약초산행은
채취의 재미, 자연의 향기, 그리고 로컬카페의 여유까지 모두 담긴
균형 잡힌 하루였다.
엄나무순이 가진 깊은 향처럼,
오늘 이 하루도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 다음 이야기
평창의 고요한 숲길에서 만난 머위.
작은 계곡 옆 고샅길을 따라,
풀냄새 가득한 마을밥상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담습니다.
👉 머위를 따라 걷는 평창 약초길,시골숲과 봄밥상 – 약초 여행 5화
(곧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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