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서울은 이미 한여름이다. 숨 막히는 도시의 열기 속에서 나는 문득 산이 떠올랐다.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시원한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바로 설악산이었다. 그중에서도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평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길이었다. 적멸보궁이 있는 신성한 봉정암, 그리고 백담사의 고요함. 나는 그 두 곳을 오롯이 나 혼자 걷고 싶었다. 문제는 한 가지였다.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가능할까? 하지만 주저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오늘, 나는 산으로 향한다.
새벽 서울을 떠나 백담사로 향하는 길
나는 새벽 3시 30분에 눈을 떴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이른 새벽에도 공기는 무겁게 느껴졌다.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라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산한 도로를 달릴 때마다 나의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서울을 떠난 지 약 2시간 반, 새벽 햇살이 살짝 비치는 시간에 나는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여름의 설악산은 겨울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초록으로 짙게 물든 산세가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백담사 탐방지원센터에서는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나는 6시 30분에 출발하는 첫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7월이라 아침부터 등산객이 많았다. 대부분은 무리지어 왔지만, 나는 혼자였다. 첫차가 도착하자마자 탑승해 산속으로 향했다.
셔틀버스가 깊숙한 계곡길을 따라 오를 때, 차창 밖으로 초록빛 숲과 차가운 계곡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더위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곧 백담사에 도착했다.
백담사에서 시작된 한여름 산행
백담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산행 준비를 마쳤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배낭을 다시 메었다. 아침 햇살이 절묘하게 백담사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잠시 산사의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 걸음씩 봉정암을 향해 나아갔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왕복 약 19km. 여름이라 해가 길어 당일치기가 가능했지만, 결코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특히 7월의 무더위가 만만찮았다. 하지만 나는 결심했다. 오늘은 반드시 내 두 발로 봉정암까지 가보겠다고.
초입은 백담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평탄한 길이었다. 계곡물은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계곡 옆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걸을 때, 나는 깊은 숲속 피서지를 걷는 듯한 상쾌함을 느꼈다. 햇살은 점점 강해졌지만 숲이 만들어낸 그늘 덕분에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수렴동 대피소, 잠시 숨을 고르다
걷고 또 걸었다.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어느새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나는 준비해온 스포츠 음료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등산객들은 대부분 쉬고 있었지만, 나는 잠시 숨만 돌리고 바로 다시 길을 나섰다. 아직 봉정암까지는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
수렴동 대피소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됐다. 여름 산행의 힘든 점은 땀이 식을 틈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숲속의 공기는 상쾌했고, 흙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나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오세암, 한여름 산속의 쉼터
한참을 오르다 보면 오세암이 나온다. 나는 오세암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내려놓았다. 이곳은 설악산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소 중 하나다. 한 여름에도 오세암 근처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나는 벤치에 앉아 김밥을 꺼내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오세암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너무 아름다웠다.
잠시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긴 뒤, 나는 다시 봉정암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부터는 정말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봉정암으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
지나면서부터는 숨이 차오르는 길이 계속됐다. 돌계단과 흙길이 번갈아 나타났다. 여름 햇살은 강렬했지만, 숲속 그늘이 있어 큰 무리는 없었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었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봉정암의 지붕이 살짝 보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한참 더 오르니 마침내 봉정암에 도착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봉정암은 상상 이상으로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그 순간, 나는 지금껏 흘린 땀방울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했다. 오직 나만의 시간을 위해 여기까지 왔기에,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했다.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음에 감사했고, 앞으로도 내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노라 다짐했다.
봉정암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하산, 또 다른 시작의 걸음
봉정암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 역시 쉽지 않았다. 오르막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하산길에서는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다시 오세암,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 백담사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려 있었다. 하루 동안 온몸의 기운을 쏟아낸 산행이었지만, 내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이 자리 잡았다.
서울로 돌아오며, 다시 떠오르는 산의 기억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온 뒤, 나는 차에 올라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밤이 깊어가던 서울로 향하는 길, 차 안은 고요했다. 나는 오늘 산에서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오늘 나는 내 두 발로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그 긴 길을 혼자 걸었다. 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숲의 시원함과 바람을 벗 삼아 걸었던 하루였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평온함이 나를 감쌌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나는 설악산의 공기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오늘의 산행은 끝났지만, 내 마음속 설악산의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언젠가 또 다른 계절에, 나는 다시 이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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