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은사에서 반나절 동안의 템플스테이를 체험한 이후, 내 삶에 잠깐의 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깨달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고요해졌고, 한동안 그 느낌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먹고 더 깊은 쉼을 찾아 떠나보기로 했다.
1박 2일 동안 나와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곳,
조용한 자연 속에 자리한 전라남도 강진의 ‘백련사’였다.
내려가는 길부터 달랐다
금요일 퇴근 후 바로 출발했다면 너무 피곤했을 테니,
나는 토요일 새벽 첫차를 타고 강진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강진까지는 KTX와 버스를 포함해 약 4시간 반.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도착할수록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줄었고,
강진만 너머 펼쳐진 바다가 보일 즈음엔
내가 도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게 실감났다.
백련사 – 산과 바다 사이, 시간도 느리게 흐른다
백련사는 다산 정약용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하지만 내겐 역사보다 먼저, ‘조용함’이 다가왔다.
사찰은 산 아래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경내를 천천히 걷는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 새소리만이 나를 감쌌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시계를 꺼내도 되는 곳이구나.”
프로그램 첫날 – 몸을 내려놓고, 마음을 따라가기
템플스테이는 도착 후 수행복을 갈아입고
간단한 일정 안내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일차 주요 일정:
- 사찰 예절 교육
- 저녁 공양
- 저녁 예불
- 야간 자유명상 (경내 걷기 포함)
사찰 예절 시간엔 인사법, 절하는 방법, 말조심 등에 대해 배웠다.
어렵진 않았지만, 익숙한 내 생활 습관과는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말을 아끼는 태도’가 내겐 신선했다.
저녁 공양은 소박했지만 진심이 담긴 밥상이었다.
나는 평소엔 빨리 먹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밥알 하나까지 씹어 삼키며
내가 지금 ‘먹고 있다’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꼈다.
저녁 예불 후, 별빛 아래 걷기
저녁 예불은 생각보다 엄숙했다.
염불 소리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예불이 끝난 후,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그날 밤 별이 유난히 많았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별이었다.
나는 그 조용한 밤의 냄새, 별빛, 내 발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날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둘째 날 – 새벽 예불과 명상으로 시작된 하루
새벽 4시 반, 목탁 소리에 눈을 떴다.
솔직히 처음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힘들었지만,
법당에 앉아 스님의 염불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간, 내게 꼭 필요했구나.”
이어서 진행된 좌선 명상은 전날보다 훨씬 몰입이 잘됐다.
잡생각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걸 흘려보내는 법을 조금은 익혔다.
발우공양 – 음식에 대한 태도가 바뀌다
이날 아침은 특별한 방식의 식사였다.
‘발우공양’이라고 불리는 수행식이다.
나무 그릇과 수건, 정해진 순서로 조용히 식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남기지 않고, 소리 없이, 감사하며 먹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느꼈다.
평소엔 음식이 그저 습관처럼 지나갔지만,
그날 아침은 그 한 끼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무심하게 먹고 있었구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디지털 없는 하루, 생각보다 더 자유로웠다
이틀 동안 나는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꺼두었고,
처음엔 불안했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오히려 불편함보다 해방감이 컸다.
알람도, 메신저도, 뉴스도 없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여백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참가 방법, 궁금한 분들을 위해
백련사 템플스테이는 템플스테이 포털이나 사찰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1박 2일 기준으로 약 5만 원 내외였고,
식사와 숙소, 프로그램이 모두 포함돼 있어 부담은 크지 않았다.
준비물은 거의 필요 없었다.
수행복은 제공되고, 필요한 건 조용한 마음과 편안한 복장, 양말 정도.
핸드폰은 꺼두는 걸 추천한다. 정말 마음이 다르다.
잠깐이지만 깊었던 시간
나는 이번 템플스테이를 통해
‘쉼이란 멈춤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쉴 틈이 없었고, 쉰다고 해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백련사에서의 1박 2일은
쉰다는 게 곧 나를 다시 채우는 일임을 알려줬다.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논밭과 산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내가 나를 데리러 다녀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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