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로컬 여행/템플 스테이

쉴 줄 몰랐던 30년, 도심 속 사찰에서 나를 잠시 내려놓았다

lala-news 2025. 7. 12. 17:32

30년 가까이 회사에 몸담으며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다.
성과, 마감, 책임, 관계...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버텨냈지만, 어느 날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손에 남은 건 실적도, 칭찬도 아닌 피로감과 허무함뿐이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템플스테이였다. 멀리 떠날 시간은 없었지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봉은사에서의 반나절이
잠시라도 나를 쉬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은사
봉은사 템플스테이

출근길, 문득 멍해졌던 그날

그날도 늘 하던 대로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셔츠를 입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출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문득 멍해졌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멈추고 싶었다.
그게 템플스테이를 검색하게 된 계기였다.

 

서울 강남, 그 한복판에 있는 조용한 절

회사 회의 때문에 수없이 지나쳤던 강남 코엑스 근처.
그 안에 사찰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봉은사. 빌딩 숲 사이에 숨어 있는 공간.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소음이 멈췄다.
바람 소리, 풀 냄새, 나무 아래서 흔들리는 기와 지붕.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고요가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살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예불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법당에 앉아 스님의 염불을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아무 역할도 없는 나 자신’으로 존재했다.
절하는 것도 어색했고, 무릎은 조금 아팠지만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기대에도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이게 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괜찮다는 느낌.
그게 내겐 참 소중했다.

 

걷기 명상 – 목적 없는 걸음

걷기 명상 시간, 나는 처음으로 ‘천천히 걷는 것’을 해봤다.
나는 늘 빨리 걷는 사람이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해야만 했고,
걸음은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발바닥에 집중하고, 한 걸음 한 걸음에 나를 실어보는 연습.
“이게 명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스치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멈춰서 바라본 순간,
나는 정말 잠깐이지만 ‘지금 여기’에 머물렀다.

 

봉은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좌선 명상 – 복잡한 머릿속 정리하기

마지막으로 진행된 좌선 명상.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회사 일정, 이메일, 다음 주 프레젠테이션이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스님이 말하셨다.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게 두세요.”

그 말이 유독 다정하게 들렸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 상태로 잠시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마음의 먼지가 조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템플스테이, 어떻게 신청했을까?

나는 봉은사 홈페이지에서 반나절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시간이 길지 않아 부담 없었고, 초보자에게 딱 맞는 구성이었다.
검색해보면 다른 사찰들도 템플스테이 공식 포털이나 각 사찰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1박 2일 체류형도 있지만,
나처럼 처음이라면 반나절 체험이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훨씬 편하다.

 

준비물? 나도 처음엔 고민했지만...

뭘 챙겨야 할지 몰라 걱정했지만,
막상 가보니 사찰에서 수행복을 제공해줬고,
핸드폰만 꺼두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내가 느낀 초보자 팁:

  • 복장은 너무 격식 차리지 말고, 편한 옷이면 된다.
  • 양말은 필수. 실내를 맨발로 다니는 건 불편하다.
  • 핸드폰은 꺼두는 걸 추천. 안 보는 것보다, 아예 꺼두면 마음이 훨씬 조용해진다.

 

비용은 어느 정도?

내가 참가한 반나절 프로그램은 1만 원 초반대였다.
1박 2일은 보통 4~5만 원 선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금액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게 온전히 시간을 줬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런 시간은 좀처럼 없었다.

 

쉼은 의무가 아니라 생존이다

이전까지는 여행을 가도 쉬는 느낌이 없었다.
일 생각, 가족 일정, 끝없는 알림…
하지만 그날, 봉은사에서의 세 시간 동안은 정말 ‘나만의 시간’이었다.
30년 동안 일하며 처음으로 나를 위한 정적을 허락받았던 순간.
그리고 그 짧은 경험은 아직도 내 안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지쳤다는 말조차 지친 이들에게,
도심 한복판에서의 이 조용한 체험을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