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로컬 여행/국내 가족 여행

엄마와 함께한 겨울 고향 여행: 간성의 바다, 추억 그리고 온기

lala-news 2025. 7. 18. 14:13

겨울은 언제나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추운 바람 속에서 떠오르는 기억, 그리운 얼굴들, 그리고 지나간 시간들. 이번 겨울, 나는 엄마와 함께 고향인 간성을 찾았다. 서울에서 출발한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진부령의 설경,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겨울 바다, 간성시장의 정겨운 풍경, 그리고 친척 어르신들을 만난 민속마을 왕곡까지. 엄마와 나는 그날, 눈과 바람을 벗 삼아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 이야기를 이곳에 남긴다.

 

황태구이
단골집 황태구이

용대리 황태정식으로 시작한 겨울 여정

겨울 아침, 서울을 떠난 차는 이른 시간부터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고속도로를 달려 첫 번째 목적지였던 용대리 황태정식 맛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무렵. 이곳은 엄마와 예전부터 자주 찾던 단골집이다.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겨 있었고, 촉촉하게 구워낸 황태구이의 짭짤한 풍미는 겨울 여행의 시작을 풍성하게 열어주었다. 따끈한 국물에 추위도 마음도 풀렸다.

 

진부령 너머, 푸른 바다와 흰 눈이 맞닿는 드라이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진부령을 넘어 통일전망대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하얗게 눈이 덮인 도로를 달리며, 가끔씩 펼쳐지는 풍경에 숨이 멎을 정도였다. 드디어 접어든 7번 국도. 이 길은 매번 느끼지만 겨울에야 진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오른쪽엔 푸른 바다, 왼쪽엔 눈 덮인 산맥. 자연이 그려낸 장면은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졌다.
엄마는 차창 밖을 바라보다 “이 길 따라 오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하셨다. 그 한마디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진항 산책길, 그리고 간성시장 속 엄마의 기억

거진항 인근에는 바다 가까이까지 걸어갈 수 있는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겨울바람이 조금 매서웠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더 맑은 공기와 고요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바다 가까이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엄마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잠시 후 들른 간성시장. 엄마는 이곳에서 과거 직접 농사지은 채소와 과일을 팔곤 하셨다. 시장 한편을 바라보던 엄마는 “저기서 겨울엔 고구마랑 배추를 팔았었지”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낯선 듯 낯익은 그 풍경을 보며, 엄마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에이프레임 카페
통창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에이프레임 카페

가진항 ‘에이프레임’, 통유리 너머의 겨울 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가진항에 있는 바다 전망 카페 ‘에이프레임’에 도착했다. 건물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겨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그 순간, 세상의 소음이 모두 멈춘 듯했다. 엄마는 창밖을 바라보다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네”라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었다.

푸르른 바다
가슴 시리게 푸르른 겨울바다

속초 장사항, 도치회와 단골집의 인심

드라이브의 마지막 코스는 늘 그렇듯 속초 장사항이다. 어민들이 직접 잡은 생선을 그 자리에서 회로 떠주는 로컬 항구. 내가 단골로 찾는 집이 있는데, 오늘은 엄마와 함께라 그런지 도치회를 서비스로 주셨다. 도치는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지역 특산물로,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회를 떠서 2층 회센터 식당으로 올라가 따뜻한 방 안에서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엄마는 “이렇게 싱싱한 회는 정말 오랜만이야”라고 하시며 접시를 비우셨다. 감사하고 따뜻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롯데리조트 속초에서의 하룻밤

저녁 늦게 도착한 롯데리조트 속초는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창밖으로는 밤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보였고, 실내는 아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바다와 바람을 마주한 엄마는 그날 밤 푹 주무셨다.
아침엔 리조트 사우나에서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정성스러운 조식을 먹으며 느긋한 아침을 보냈다. 그 시간이 어찌나 편안하고 고요하던지, 엄마는 “이렇게 편한 여행은 처음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왕곡마을, 잊지 못할 마지막 인사

체크아웃 후 우리는 속초 중앙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여전히 북적였고, 인기 있는 닭강정을 하나 사서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그곳은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 위치한 왕곡마을. 현지인이 실제 거주하는  민속마을로, 지금도 우리 친척 어르신들이 살고 계신 곳이다. 큰집, 작은집을 돌며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뵌 얼굴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해졌다. 연로하신 모습에 ‘다음엔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겨울바다 카페
겨울바다 카페

겨울바다 카페에서 마무리한 고향의 하루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이름도 인상적인 카페 ‘겨울바다’였다. 통유리 창 너머로 펼쳐진 겨울 바다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엄마는 “예전엔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가질 줄 몰랐는데…” 하셨다. 나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마음은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엄마가 좋아하시는 올드팝을 틀어놓고 함께 흥얼거렸다. 창밖엔 겨울 햇살이 지고 있었고, 우리 마음엔 따뜻한 추억이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이번 겨울 여행은 단순한 고향 방문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 속엔 지나간 기억, 지금의 따뜻함, 그리고 앞으로의 소중함이 모두 담겨 있었다. 간성의 겨울바다는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에 수많은 감정이 스며들었다.
다음 겨울에도, 엄마와 다시 이 길을 달릴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