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와인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와인 모임에서 처음 나왔을 때, 다들 반신반의했다. “국내에서 그런 곳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많았지만, 멤버 중 한 명이 추천한 ‘영천 와인터널투어’가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대구 근교이자, 전국 최대 포도 산지인 경북 영천에서 한국 와인의 현주소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말에, 결국 우리는 열 명 남짓한 멤버들과 함께 여행을 결심했다. 단순한 시음이 아닌, 와인 양조장 투어와 와인 갤러리 체험, 테루아 이해까지 가능한 이 투어는 단연 특별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여행은 단순한 ‘술 마시는’ 여행이 아닌, 한국 와인을 재발견하는 여정이 되었다.
출발부터 설렘 가득 –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한 접근성
우리는 서울에서 아침 8시에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동대구역에서 영천까지는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로 30~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투어는 오전 11시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다.
영천와인사업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신청을 하고, 인원과 일정을 맞추면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는 공식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홈페이지: ycwine.or.kr)
와인터널 입장 – 한국 와인의 시작을 만나다
와인터널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웅장했다.
예전 군용 탄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이 터널은 낮에도 시원하고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내부에는 한국 와인 관련 전시물과 지역 와이너리 정보를 볼 수 있는 갤러리, 그리고 수많은 와인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해설사는 영천이 왜 한국 와인의 중심지인지부터 설명해줬다.
국내 최대 포도 생산지이며, 일조량, 토질, 배수 조건 등 와인 재배에 최적의 테루아를 가진 도시라는 점이 와인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 품종 포도를 활용한 지역 와인의 다양성과 품질 향상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영천 대표 와이너리 소개 & 시음 체험
가장 기대되던 시음 코스가 시작되자, 멤버들의 얼굴이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번 투어에서 제공된 시음 와인은 다음과 같았다:
- 뱅꼬레 청수 레드: 은은한 타닌과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정통 수제 와인
- 위 와이너리 씨엘 화이트: 복숭아 향이 살짝 도는 산뜻한 드라이 화이트
- 오계리 와이너리 스위트 오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인상적
시음은 단순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색상, 향, 맛의 순서에 따라 와인의 특징을 직접 분석해보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와인 초보자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었다.
각 와이너리의 철학과 양조 과정, 포도 품종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이해도가 훨씬 높았다.
와인 갤러리 & 테루아 체험존
시음 후에는 갤러리 관람이 이어졌다. 벽면 가득히 전시된 지역 와인들, 한국 와인의 발전 연대표, 그리고 영천 와인의 수출 사례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테루아 체험존’이었다.
영천 내 다양한 지역의 토양 샘플이 전시되어 있었고, 포도 재배 시 어떤 토양이 어떤 품종에 적합한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은 해외 와이너리 투어에서도 흔치 않은 구성이었다.
와인 한 병이 단순히 ‘발효’의 결과물이 아닌, 지역의 기후, 토질, 인간의 손길이 어우러진 집약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점심 식사 – 지역 음식과 와인의 완벽한 페어링
투어 중간에는 지역 특산물로 구성된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다.
우리는 와인터널 인근 식당에서 한우 육회비빔밥과 복숭아 와인 페어링을 경험했다.
일반적인 와인과 음식의 조합이 아닌, 지역 특산물과 그 지역 와인의 조화라는 점에서 매우 신선했고, 미각적으로도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식사 중 멤버들은 각자 가장 인상 깊었던 와인을 공유하며, 다음 방문을 기약하기도 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와인은 ‘위 와이너리 씨엘 레드’였는데, 부드러운 타닌과 초콜릿 향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기념품 구입 & 마무리 체험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 숍 방문이었다. 갤러리 한편에는 영천에서 생산된 와인뿐만 아니라, 와인잔, 오프너, 와인 식초, 젤리 등 다양한 와인 관련 제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단체로 와인을 몇 병씩 구매했고, 일부 멤버는 ‘내 이름이 적힌 병 입 와인’을 만드는 DIY 체험도 신청해 따로 제작했다. (이 체험은 뱅꼬레 와이너리나 위 와이너리에서도 연계 가능)
와인을 넘어선 경험 – 다시 떠나고 싶은 와인 여행
이번 영천 와인터널투어는 단순한 지역 관광이 아니었다.
한 잔의 와인을 통해 한국 농업의 변화, 지역 경제, 식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열정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리 와인 모임 멤버들은 하나같이 "다시 오자"는 말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한국에도 ‘진짜 와인을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영천이라는 도시는 더 이상 '포도의 고장'이 아니라, '한국 와인의 본고장'이라 불릴 만하다.
여행 정보 요약
- 운영처: 영천와인사업단
- 홈페이지: http://ycwine.or.kr
- 예약 방법: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 필수 (단체 가능)
- 소요 시간: 약 2~3시간 (시음 포함)
- 추천 대상: 와인 초보자, 동호회, 커플, 가족 단위 모두 가능
- 기타 팁: 시음이 있으므로 대중교통 또는 대리운전 권장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색다른 국내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영천 와인터널투어는 강력히 추천할 만한 경험이다.
단 한 병의 와인도, 그 지역의 땀과 철학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다음 와인 한 잔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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