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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숨겨진 중세 마을, 시에지슈오아라에서의 하루

lala-news 2025. 7. 5. 02:04

나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시보다는 조용하고 숨겨진 곳을 찾는 편이다. 그날도 평범한 루마니아 여행 일정에서 벗어나, 소도시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시에지슈오아라(Sighișoara)’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이 도시는 루마니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마을로, 드라큘라의 고향이라는 흥미로운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한국어로 된 정보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이 짧은 여행 스냅 사진 정도였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곳을 꼭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실제로 걷고, 보고, 느낀 시에지슈오아라의 매력은 단순한 사진 한 장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중세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그 특별한 순간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루마니아드라큐라성

 

 

1. 고요한 새벽, 시에지슈오아라에 도착하다
나는 루마니아의 대도시인 부쿠레슈티에서 기차를 타고 몇 시간 동안 이동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평야와 조용한 숲은 점점 도시의 흔적을 지워갔다. 어느새 열차는 작은 시골 마을의 작은 역에 멈춰섰고, 안내 방송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시에지슈오아라’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나는 배낭을 메고 조심스럽게 기차에서 내렸다.

처음 맞이한 시에지슈오아라의 공기는 상쾌하고 맑았다. 역 앞에는 관광객 한 명 보이지 않았고, 조용한 골목길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분위기에 나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2. 성벽 너머로 이어진 중세의 골목
시에지슈오아라는 실제로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시답게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요새처럼 느껴졌다. 나는 성벽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 돌로 쌓은 작은 입구를 발견했다. 그 문을 통과하는 순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모두 자갈로 포장되어 있었고, 오랜 세월을 견딘 듯한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건물의 벽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창문마다 화사한 꽃들이 걸려 있었다. 나는 골목을 걸으며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꽃잎의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시계탑이었다. 높이 솟은 시계탑은 도시 어디서나 보였고, 매 정각이 되면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시계탑으로 향했다.

3. 드라큘라의 고향, 블라드 체페슈의 흔적을 따라
시에지슈오아라는 단순한 중세 마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바로 ‘드라큘라’로 잘 알려진 블라드 체페슈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계탑 근처에 있는 블라드 체페슈의 생가를 찾았다.

생가는 비교적 작은 건물이었지만,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건물 내부는 어둡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니, 블라드 체페슈의 초상화와 당시 사용되었던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그림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방안을 둘러보았다.

특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에지슈오아라의 전경은 인상적이었다. 붉은 지붕이 이어진 도시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삽화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창가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정말 그의 어린 시절 무대였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4.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리고 따뜻한 한 끼
나는 성벽을 따라 언덕 위 전망대로 향했다. 오르막길은 제법 가팔랐지만, 중세 시대 그대로 남아 있는 돌계단을 밟으며 걷는 느낌이 특별했다. 숨이 차오를 무렵 마침내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는 시에지슈오아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과 시계탑, 성벽이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카메라보다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기억하고 싶었다.

내려오는 길, 작은 현지 식당을 발견했다. 나는 현지 음식인 ‘치오르바 데 부르타(Ciorba de burta, 루마니아식 곱창 수프)’를 주문했다. 식당 안은 아늑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 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끈한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깊고 진한 맛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줬다.

5. 해 질 무렵, 마지막 산책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다시 천천히 골목을 거닐었다. 해 질 무렵의 시에지슈오아라는 더욱 고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노을빛에 물든 건물들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거리의 돌길은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그 순간 나는 그저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어느덧 내가 걷고 있는 이 골목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담아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그 고요함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시에지슈오아라에서 보낸 하루는 내 여행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소설 속에 들어온 듯한 도시였다. 내가 느낀 이곳의 매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건물이나 명소보다도 그곳의 공기, 조용한 골목길, 그리고 고요한 풍경에서 오는 특별한 감정이었다.

루마니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시에지슈오아라를 추천하고 싶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그 속에서 내가 마치 중세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선물 받게 된다. 시에지슈오아라의 하루는 그렇게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